어렸을 때 외할아버지가 해줬던 얘기야.
(편의상 외증조할머니는 그냥 어머니라고 쓸게)
외할아버지는 산골에서 홀어머니 모시고 살았었어. 일제강점기였구, 광산에서 일을 하셨대.
그러다가 외할머니랑 결혼을 하면서 광산이 있는 읍내쪽으로 나와서 살게 된 거야.
홀어머니는 혼자 산골에 남아 계시구.
외할아버지가 살았던 곳이 어머니 계시는 데랑 걸어서 왕복 예닐곱시간 걸리는 거리였던가봐.
일주일에 한번 주급을 받았는데, 그게 쌀이었대.
쉬는날에 그 쌀을 짊어지고 어머니를 찾아가서 쌀 드리고,
집에 일 봐드리고 그날 다시 돌아오면 밤 늦게가 되는 거지.
보통 좀 해가 끝나기 전에 출발해서 날이 가기 전에 집에 도착했는데,
그러던 중에 어쩌다보니 어머니 댁에서 그날따라 늦게 출발하게 된거야.
자고 아침에 출발하면 출근시간에 늦으니까.
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좀 초조하셨다구 하더라.
다행히 달이 밝아서 산길을 걷는데 (계절을 물어보진 않았는데 산길이 보였을 정도니 울창한 여름은 아니었을 것 같아)
갑자기 하얀 두루마기 입은 사람이 나타나더니 같이 가자고 했대.
외할아버지는 조금 당황해서 ㅇㅇ 알겠다고 하고 같이 가는데 그사람이 걸음이 진짜 가볍고 빠르더래.
정신없이 계속 그 뒤만 따라서 산을 막 걷다가 걷다가
그 사람이 웃으면서 '다 왔다'고 해서 정신을 차렸는데 산 아래 이제 외할아버지네 마을이 보이고,
해가 쫙 뜨고 있었다고...
그리고 그 사람은 없어짐ㅋ
편도 3~4시간 거리고 밤길이라 더뎠다고 해도 두 배 넘는 시간을 밤새도록 쏘다닌 거지...
결국 밤새 걸어와서 그날 출근 못하셨다 함.......
외할머니가 말하길 그날 외할아버지가 안와서 걱정했는데, 아침에 들어오는 몰골이 넋이 나간 거 같았대ㅋ
옷 더러워져있고.
외할머니의 추측으로는 밤에 산길 위험한데 그 사람=도깨비가 외할아버지 어디 안 다치게 도와주면서도 골린 것 같다고 했음.
외할아버지는 딱히 부연설명을 하진 않았지만ㅋ
그 후로 해 저물기 전에 반드시 집으로 돌아왔다고...ㅋ 그리고 그 사람 다시 못 봤고 마을에 그 사람이 누군지 아는 사람도 없었대.
난 이 얘기 어렸을 때 듣고 나서부터 도깨비의 존재를 믿고 있음.
(우리나라 도깨비는 평범한 사람, 동물 형상으로 잘 나타난다고 하더라..)
외할아버지한텐 공포경험이었겠지만 난 도깨비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... 거지.
작가가 꿈인데 이 얘기 모티브로 소설도 쓰구 싶다능........
그래서 외할아버지 돌아가시기 1년 전쯤?에 그 때 만났던 도깨비에 대해 여쭤봤는데
그때는 헛거에 할 얘기가 뭐 있냐고 말씀을 안해주시더라구. 이제 외할아버지도 돌아가셨고
외할머니도 그 때 외할아버지가 도깨비로 추정되는 그 사람과 무슨 얘기를 했는지 어떤 모습이었는지 자세히 안 물어봤대
내가 들었을 때는 도깨비랑 걸으면서 대화도 했다는데 홀어머니 얘기하고 쌀 가져다주는 거 알고 있었다고 했던 거 같아.
나도 어릴 때 들은 얘기라 가물가물.
상세한 건 내 상상과 언젠가 내가 만날 수 있을지더 머르는 도깨비에게... 미뤄야할듯ㅋ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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